중요문화재
종루
1711년(에도 시대 말기)
도리길이 1칸
들보길이 1칸
홑겹
이리모야 즈쿠리
혼가와라부키
예상 소요 시간: 2분

고요함 속에서 울려 퍼지는
부처님의 가르침
센주지의 종루는 전형적인 일본 불교 사찰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건물로 정사각형 모양으로 되어있으며 12개의 기둥이 무거운 팔작지붕과 박공지붕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외관은 나라현 도다이지 절의 종루와 비슷하나, 건립 과정에서 서로 관련이 있었다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993년에 실시된 대규모 보수 공사 당시 한 기와에서 발견된 명문에 따르면, 종루는 1713년에 완공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1645년 센주지의 대부분을 파괴한 화재로 절의 종은 소실되었는데 사찰 제15대 주지였단 교초 쇼닌(1614~1646)이 세상을 떠난 지 6주기인 1652년에 새 종이 주조되었습니다. 교초는 절의 가장 귀중한 보물을 지키기 위해 자결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부친의 뒤를 이어 센주지의 주지에 올랐음을 보고하기 위해 현재의 도쿄인 에도를 방문했으나, 막부의 허락 없이 주지 자리를 승계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됩니다. 쓰번의 다이묘들은 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했으나, 막부는 절의 창건자인 신란 쇼닌(1173~1263)이 쓴 문서를 막부에 제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를 거부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에, 교초는 절의 가장 소중한 재산을 내주기 않기 위해 에도에서 32세로 할복해 자결했습니다.
새로운 종의 주조는 쓰번의 초대 다이묘의 장녀이자 교초의 아내가 후원했는데, 그녀는 종소리가 남편에 대한 추억을 모든 곳으로 전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녀는 쓰번의 명장이었던 쓰지 에치고노가미 시게타네(생몰년 미상)에게 종의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미에이도에서는 매일 아침 6시 30분과 법회 시작 전에 이 종을 울립니다.
교초 쇼닌
교초(1614~1646)는 정토진종 다카다파의 본산인 센주지의 15대 주지였습니다. 처참한 화재로 인한 여러 중요 사찰 건물의 소실과 막부의 극심한 압박으로 인해 교초는 사찰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자살을 택했습니다. 아내는 다이묘 도도 다카토라(1556~1630)의 장녀인 다카마쓰인(생몰년 미상)으로, 이토 공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도다이지 절
나라 시대(710~794)에 나라시에 세워진 도다이지 절은 화엄종 불교의 본산으로, 쇼무 천황(701~756)의 칙령으로 창건되었습니다. 절의 본존불은 거대한 노사나불상입니다.
히지키 첨차

이리모야 즈쿠리
신부쓰(1209~1258)는 정토진종 다카다파의 본산인 센주지의 두 번째 주지로, 신란 쇼닌(1173~1263)의 직계 제자였으며 스승의 신성한 가르침을 계승했습니다. 신부쓰는 종파 교리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간토 지역에서 다카다파의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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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소요 시간: 30초